구약성서

느헤미야기 7장 61절~72절

by 아비또 posted Jun 30,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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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자기들의 집안과 종족, 그리고 자신들이 이스라엘 사람이라는 것을 밝히지 못하면서도, 텔 멜라,텔 하르사, 크룹, 아똔, 임메르에서 올라온 이들은 다음과 같다.

62.

곧 들라야의 자손, 토비야의 자손, 느코다의 자손 육백사십이 명이었다.

63.

이 밖에 사제들 가운데에는, 호바야의 자손, 코츠의 자손, 바르질라이의 자손들도 있었다. 바르질라야는 길앗 사람 바르질라이의 딸 가운데 하나를 아내로 맞아들이면서 그 이름까지 받았다.

64.

이들은 족보를 뒤져 보았지만 이름이 들어 있지 않아, 사제직에 적합하지 않다고 제외되었다.

65.

총독은 그들에게, 우림과 툼밈으로 판결을 내리 사제가 나설 때까지 가장 거룩한 음식을 먹지 말라고 지시하였다.

66.

온 회중의 수는 사만 이천삼백육십 명이었다.

67.

이 밖에도 그들의 남녀 종이 칠천삼백삽십칠 명이었고, 남녀 성가대가 이백사십오 명 이었다.

68.

낙타는 사백삼십오 마리, 나귀는 육천칠백이십 마리였다.

69.

각 가문의 우두머리들 가운데에서 공사에 쓸 기금을 바친 이들이 있었다. 총독도 금화 천 드라크마와 쟁반 쉰개, 사제 예복 오백삼십 벌을 금고에 기부하였다.

70.

각 가문의 우두머리들이 공사 금고에 바친 것은 금화가 이만 드라크마, 은화가 이천 미나, 사제 예복이 예순일곱 벌이었다.

72.

사제들과 레우위인들과 문지기들과 성가대와 백성 일부와 성전 막일꾼들, 그리고 모든 이스라엘 사람이저마다 제 성읍에 자리를 잡았다.

 

율법을 통독하다

 

일곱째 달이 되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저마다 성읍에 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