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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약의 비유 <8>나무와 열매의 비유... 집 짓는 사람의 비유

의롭고 슬기로운 사람은 가르침을 듣고 실천한다

2014.07.13발행 [1273호]

마태 7,15-20.24-27; 루카 6,43-49)

마태오 복음 7장에 담긴 ‘나무와 열매의 비유’(마태 7,15-20)는 ‘산상설교’로 구분할 수 있는 단락에 속해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마태오 복음의 특징을 간략하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마태오 복음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주제에 따라 한데 묶어 전하는 특징을 보여준다. 

5─7장 산상설교 - 군중과 제자들

10장 파견에 대한 가르침 - 제자들

13장 비유에 대한 가르침 - 군중과 제자들

18장 공동체에 대한 가르침 - 군중들

23-25장 재림과 심판에 대한 가르침-군중과 제자들

이처럼 5─7장은 다양한 주제에 대한 가르침 부분으로 그 대상은 군중과 제자들이다. 나무와 열매의 비유는 이 산상설교 단락의 마지막 부분에 위치한다.

거짓 예언자를 가려낼 수 있는 지혜

나무와 열매의 비유는 “거짓 예언자를 조심하여라”는 경구로 시작한다. 신약성경에는 거짓 예언자에 대한 언급이 적지 않게 등장한다(마르 9,38-40; 13,21-23; 1요한 2,18-27; 4,1-6; 묵시 2,20). 비교적 자주 언급되는 것을 보면 ‘거짓 예언자’는 그만큼 초대 교회 안에서 비중 있게 다루어지던 문제였으리라. 

성경은 아니지만 ‘열두 사도의 가르침’이라고 일컫는 「디다케」에서도 한 예를 찾을 수 있다. 

“만일 그가(예언자가) 금전을 요구한다면, 그는 거짓 예언자이다”(11,6). “그들은 양의 옷차림을 하고 너희에게 오지만 속은 게걸 든 이리들이다.” 

이 표현에서 강조되는 것은 비유에서 자주 사용되는 ‘대조’이다. 양의 옷차림과 게걸스런 또는 탐욕스런 실제 모습을 통해 그들의 겉과 속이 다르다는 것이 대조적으로 드러난다. 마치 전혀 위험해 보이지 않는 겉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들이 공동체에 커다란 위험을 미칠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구약성경에서 ‘양’은 하느님의 백성을 나타내는 비유로 사용됐다. “당신 백성을 양떼처럼 이끌어 내시어…”(시편 78,52; 100,3). 탈출을 언급하는 이 시편 구절은 하느님을 목자의 모습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양의 모습으로 나타낸다. 이러한 구약성경의 의미는 신약성경에서도 ‘교회’를 나타내는 표상으로 자리하게 된다.

“제가 떠난 뒤에 사나운 이리들이 여러분 가운데로 들어가 양 떼를 해칠 것임을 나는 압니다. 바로 여러분 가운데에서도 진리를 왜곡하는 말을 하며 자기를 따르라고 제자들을 꾀어내는 사람들이 생겨날 것입니다”(사도 20,29-30). 

사도행전의 표현을 빌리면, 거짓 예언자는 ‘진리를 왜곡하는 자들’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이미 초대 교회 안에서도 이들에 의한 폐단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너희는 그들이 맺는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성경에서 ‘열매’라는 표현은 크게 두 가지 의미로 구분해 볼 수 있는데, 한편으로는 어떤 행동에 따른 결과를, 다른 한 편으로는 행동 그 자체를 의미할 수 있다. 마태오 복음에서 말하는 ‘열매’는 행동에 따른 결과를 일컫는 것이기보다는 ‘행동 그 자체’를 강조하는 표현으로 보인다. 앞의 표현을 풀어본다면, “너희는 그들이 하는 행동을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비슷한 의미와 내용을 가지고 사용된 구절을 마태오 복음에서 찾을 수 있는데, 여기서도 열매는 행동 자체를 강조한다. 

“나무가 좋으면 열매도 좋고 나무가 나쁘면 그 열매도 나쁘다. 나무는 그 열매를 보면 안다.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가 악한데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겠느냐? 사실 마음에 가득찬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 선한 사람은 선한 곳간에서 선한 것을 꺼내고, 악한 사람은 악한 곳간에서 악한 것을 꺼낸다”(마태 12,33-35).

비유에 등장하는 다음 표현 역시 마태오 복음 12장의 내용과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다. “어떻게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거두어 들이고,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거두어들이겠느냐?” 답은 당연히 ‘아니다’이다. 하지만 질문의 형태로 된 이 표현은 어떤 답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수사학에서 주장하고자 하는 내용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이다. 원문에 따라 다르게 해석한다면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거둘 수 없고,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거둘어들일 수 없다”고 읽을 수도 있다. 비유의 내용으로 생각해 본다면 이 표현은 겉으로 보이는 것과 실제의 차이를 강조한다. 거짓 예언자들은 예언자들처럼 보이지만 실상 그들의 행동은 다르다는 의미이다. 

“이와 같이 좋은 나무는 모두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는다.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나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 같은 형식과 용어를 반복하여 표현한 이 구절은 당연함과 불가능, 그리고 좋은 것과 나쁜 것 사이의 대조를 나타낸다. 그리고 여기에서 사용된 ‘좋다’ ‘나쁘다’는 감정이나 취향에 따른 구분이기보다는 윤리적 의미를 담은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쉽게 바꾸어 말한다면 선한 것과 악한 것의 구분이라 하겠다.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모두 잘려 불에 던져진다.” 비유는 종말의 심판에 대한 언급으로 넘어간다. 그리고 문맥으로 볼 때, 심판의 기준은 사람들의 행동이다. 그 의미는 뒤이어 나오는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것’(마태 7,21-23)을 통해 조금 더 명확해진다. 또한 이 종말의 심판에 대한 표현은 세례자 요한이 바리사이와 사두가이들에게 말했던 내용을 떠오르게 한다. “독사의 자식들아 (…)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 (…) 도끼가 이미 나무뿌리에 닿아 있다.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모두 찍혀서 불 속에 던져진다”(마태 3,8-10). 회개를 위한 세례자 요한의 선포와 예수님의 가르침은 모두 ‘열매’라는 표현을 통해 구체적 행동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그것이 종말의 심판에서 기준이 될 것임을 드러낸다.

이 비유는 ‘거짓 예언자’에 대한 경고로 시작하고 끝맺지만, 내용은 이 비유를 듣거나 읽는 모든 이들에게 해당한다. 거짓 예언자들을 그들의 행동을 통해 구별할 수 있는 것처럼, 신앙인들에게 ‘좋은 열매’, 곧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행동은 심판 때의 기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심판을 준비하는 지혜

집 짓는 사람의 비유(마태 7,24-27)의 내용은 비교적 간단하다. 슬기로운 사람은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사람으로, 어리석은 사람은 모래 위에 집은 지은 사람과 비교된다. 그리고 슬기로움과 어리석음을 나누는 구분은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는 것”이다. 비, 강물, 바람은 폭풍우의 이미지로 이해할 수 있는데, 이것은 구약 성경에서 종말에 있을 심판에 대한 상징으로 사용되었다(에제 13,10-15; 이사 28,14-19). “주 우리 하느님이 말한다. 내가 분노하여 폭풍을 일으키고 진노하여 비를 쏟으며, 분노하여 큰 우박을 내려 그 벽을 허물어 뜨리겠다”(에제 13,13). 이와 같은 심판에서 슬기로운 사람은 ‘무너지지 않는다.’ 하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무너져 버린다. 완전히 무너지고 만다.’ 

집 짓는 사람의 비유에서 강조되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것이다. 이것이 슬기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제시되는데, 전체 문맥에서 보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사람은 ‘의로운 사람’이다. 왜냐하면 5─7장 산상설교의 시작 부분에 표현되는 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의로움이고, 그것은 새로운 가르침으로 모세의 가르침과 대별되어 나타나기 때문이다(마태 5,17-20). 

결국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은 의롭고 슬기로운 사람으로 종말의 심판에서 멸망하지 않으리라는 것이 예수님이 전하는 비유의 의미라 할 수 있다. 

나무와 열매의 비유와 집 짓는 사람의 비유는 하나의 가르침이라 볼 수 있다. 이 두 비유는 모두 종말에 있을 심판을 배경으로 이야기된다. 또한 이 두 비유 사이에는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에 대한 가르침이 있다. 결국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나무와 열매의 비유는 거짓 예언자들에 대한 경고라는 구체적인 문제들에 대해 말하고 있다. 또 집 짓는 사람의 비유는 모든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일반적인, 보편적인 가르침이라 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비유에서 거짓 예언자들이 행동을 통해 구분되듯이, 우리 모두는 행동을 통해, 곧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느냐, 아니냐에 따라 심판받을 것임을 강조한다.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는 이는 슬기로운 사람과 같다”(마태 7,24). 

출처 가톨릭평화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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