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수난 성지 주일(마르 15,1-39)

by 주임신부 posted Apr 03,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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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연중 가장 중요한 전례 시기인 성주간이 시작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미사 중에 마르코가 전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기를 듣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형 선고에서 어느 한 사람도 망설임이 없습니다. 모두가 관여하고, 모두가 연루되고 있습니다. 당시 현장에 둘러 서 있던 사람들이나, 그 사건을 전해 듣는 사람들이나 ... 모두 다! 이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두고 비켜 서 있거나, 외면해 버릴 수 있는 사람은 어느 누구도 없게 되었습니다.

진행되는 사건에서 한 사람이 깊이 연루됩니다. 바라빠입니다. 사람들은 바라빠를 풀어 주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를 지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바라빠에게 생명이 선사되듯이, 그렇게 우리 그리스도인은 주님의 죽으심을 통하여 생명에로 부르심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바라빠에게서 우리 그리스도인의 운명이 예시되고 있다는 것을 봅니다.

아무런 죄도 없으신 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대신 죽으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우리를 위하여 대신 돌아가셨습니다."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은 죄 때문이 아닙니다. 죄는 결코 죄 없는 사람을 심판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죄 없으신 분께서는 죄 있는 자를 대신하여 당신을 심판하도록 하실 수 있습니다. "자기 벗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과 같이 큰 사랑은 없습니다." 그 큰 사랑은 예수님에게서 흘러나오는 불가항력적 힘입니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그 사랑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진행되는 십자가 사건에서 또 한 사람이 깊이 연루되고 있습니다. 키레네 사람 시몬입니다. 원치 않는 그에게 사람들이 강제로 십자가를 지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수고를 받아들이십니다. 하느님의 아드님께서는 억지로 강요받은 사람으로부터의 도움을 허락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의 도움을 모른 채 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아드님께서 앞서 가신 십자가의 길을 우리도 뒤따르도록 언제나 부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무 도움이나 마구 받아들이는, 자존심도 없는,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자존심은 자칫 교만일 수 있습니다. 혼자서 부딪히려 하고, 혼자서 견디어내려고 하고, 혼자서 해결하려고 하고, 혼자서 모든 것을 다 해내려 합니다. 그렇지만 "혼자서" 가능한 삶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우리는 더불어 함께 살아야 합니다. 가족이 있고, 친구들이 있으며, 직장 동료나 이웃 사람들이 있고, 신앙공동체 안에 자매 형제들이 있습니다. 그들 모두는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사람들인데, 우리는 종종 그들을 거들떠보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십자가는 "혼자서"가 아니라, "함께" 지고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하여 짐을 대신 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의 사랑의 계명을 실천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 주님의 십자가가 그러합니다.
성주간을 보내면서 주님께서 가신 십자가의 길에 함께 해야 합니다. 특히 성삼일 전례에 적극적으로 참여 우리를 위하여 대신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크신 사랑을 체험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들은 지나가는 어떤 사람에게 강제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게 하였다."(마르 15,21) 그 어떤 사람이 성주간을 지내는 "나", "우리 그리스도인"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