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공부하다보면 구약의 창세기 첫 장부터 신약의 묵시록 마지막 절까지 한결같이 관통하는 그 "하나"가 무엇일까 물어보게 됩니다. 그 "하나"로 모든 것과 통하는 것이 무엇일까 깊이 묵상해 봅니다.
율법을 공부하던 사람들은 해야 할 계명들과 하지 말아야 할 금령들을 나누고, 또 지키기 쉬운 계명들과 어려운 계명들로 즐겨 구분하였습니다.그러면서도 그 모든 것이 너무 복잡하였기 때문에 다른 많은 계명들을 아우를 수 있는 하나의 계명(= 가장 큰 계명, 첫째가는 계명)에 대해 묻곤하였습니다.
이 물음을 두고 마태오 복음서에 의하면 예수님께 시험하기 위하여 묻고 있습니다. "바리사이들이 한데 모였다. 그들 가운데 율법 교사 한 사람이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하여 물었다."(마태 22,35)
거기에 비해 마르코 복음서에서 율법 학자는 예수님께 진지하게 물어옵니다. "그들이 토론하고 있는 것을 듣고 있다가 예수님께서 대답을 잘 하시는 것을 보고 그분께 다가와 물었다."(마르 12,28)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이 날마다 바치는 '쉐마 아스라엘' 기도에서 첫 번째 신앙조목을 실천해야 한다고 대답하십니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신명 6,4-5) 그리고 바로 이어서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레위 19,18) 하고 가르치십니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계명은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다 하더라도, 이미 구약성경 안에 분명하게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이 계명들의 중요성을 예수님께서는 몸소 당신의 행동으로 보여주십니다. 이 두 계명을 철저하게 하나로 묶어서 당신 사랑을 모든 이에게, 특히 소외 받고 업신여김 당하는 사람들에게 선물로 주십니다. 모든 신앙조항(= 율법)을 뛰어넘어, 하느님의 원천적인 법이 다시 힘을 발휘하도록 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랑의 이중 계명을 새로운 계명으로 이해하고 받아 들인 율법학자를 인정하고 칭찬해 주십니다. "너는 하느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마르 12,34)
사순 시기를 보내는 우리에게 하느님 나라가 멀리 있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