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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의 속도 

(사랑은 느림에 기대어 중에서)


"화를 잘 내는 자와 사귀지 말고 성을 잘 내는 사람과 다니지 마라. 네가 그의 길에 익숙해져 너 스스로 올가미를 써서는 안 된다."(잠언 22,24-25)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함께하시기를 빕니다. 지난 한 주간도 주님과 동행하는 기쁨을 누렸는지요? 교우들 모두 자기 인생의 때를 사느라 분주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앞두고 설레하는 이들도 있고, 뜻하지 않은 시간에 찾아온 질병과 사고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도 있습니다. 왠지 모를 불안함에 시달리는 이들도 있습니다. 주님께서 친히 그 모든 이들의 종이 되어주시기를 청합니다. 


"여러분 가운데에 고통을 겪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기도하십시오. 즐거운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찬양 노래를 부르십시오."(야고보 5,13)


시간의 속도는 일정하지만, 사람들이 경험하는 속도는 제가끔 다릅니다. 권태에 빠진 영혼에게는 너무 느리고, 열정에 휘말린 이들에게는 지나칠 정도로 빠릅니다. 하지만 어느 경우든 거리를 두고 바라보면 시간이 꿈결같이 흘러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덧없는 인생'이라는 말이 실감 난다 말하면 이미 늙어 버린 것일까요? 덧없는 삶이 그나마 아름다운 것은 고마운 인연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이 신비롭기만 합니다. 하고 많은 사람 중에 우리를 한 공동체로 세우신 까닭이 무엇일까요? 참 고맙습니다. 오랜 세월을 함께 걸어온 분들이나 새로운 지체가 된 분들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교회 공동체는 새로운 인류입니다. 이런저런 기준을 내세워 사람들을 가르고 나누는 것이 현실이라면, 교회는 그런 차이를 넘어 일치를 지향하는 이들의 모임입니다. 만나 피차 위로하고, 위로받고, 격려하고, 함께 기도하고, 찬양하고, 아파하고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는데, 그럴 수 없는 현실이 원망스럽기만 합니다.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조급한 마음을 내려놓고 느긋하게 좋은 시간을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흔들리는 마음을 다독이느라 서가에서 피에르 쌍소의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를 꺼내 밑줄을 그어 놓았던 구절을 읽어 보았습니다. '느린 사람들은 평판이 좋지 못하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이 책에서 저자는 느림을 의도적으로 선택하겠다고 말합니다. '느림. 내게는 그것이 부드럽고 우아하고 배려 깊은 삶의 방식으로 보인다.' 조금 길지만 그가 쓴 문장을 인용하겠습니다. 천천히 읽으며 머릿속에 이미지를 떠올려 보십시오.


♧나는 굽이굽이 돌아가며 천천히 흐르는 로강의 한가로움에 말할 수 없는 애정을 느낀다. 그리고 거의 여름이 끝나 갈 무렵, 마지막 풍요로움을 자랑하는 끝물의 과일 위에서 있는 대로 시간을 끌다가 마침내 슬그머니 사라져 버리는 9월의 햇살을 몹시 사랑한다. 또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얼굴에 고귀하고 선한 삶의 흔적을 조금씩 그려 가는 사람들을 보며 감동에 젖는다. 시골의 작은 마을 카페. 하루의 노동을 끝낸 사내들이 가득 채운 포도주 잔을 높이 치켜든 채 그 붉고 투명한 액체를 가만히 응시한다. 지그시 바라보다가 드디어 조심스럽게 입으로 가져가 마시는 모습은 경건해 보이 기까지 한다. 수백 년이 넘은 아름드리나무들. 그들은 수 세기를 이어 내려오면서 천천히 자신들의 운명을 완성해 간다. 아주 천천히. 그것은 영원에 가까운 느림이다.♧


우리를 마구 밀어붙이는 세상에 살면서 느림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시간에 떠밀려 표류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결단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느림을 능동적으로 선택하는 이들은 자기 숨이 가지런해짐을 실감합니다. 급한 성정이 결삭을 때 우리 주변에 평화의 기운이 감돌게 됩니다. 사람들을 사정없이 휘몰아치는 세상에 살면서 우리 마음에는 시퍼런 멍 자국이 많이 생겼습니다. 그 때문인지 조그마한 자극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며 삽니다. 급한 마음을 자꾸 하느님 앞으로 가져가야 하는 까닭은 그 때문입니다. 

마음의 속도를 조금만 줄여 보십시오. 고요한 마음에만 들리는 소리가 있습니다. 질주하느라 미처 보지 못하던 것들이 눈에 들어울 겁니다. 

조급한 마음에 사로잡히는 순간 우리 속에는 불평불만이 가득 차오릅니다. 출애굽 공동체가 큰 시련을 겪은 때는 조급한 마음에 사로잡혔을 때입니다.


"그들은 에돔 땅을 돌아서 가려고, 호르 산을 떠나 갈대 바다로 가는 길에 들어섰다. 길을 가는 동안에 백성은 마음이 조급해졌다."(민수기 21,4)


비록 현실이 우리 뜻대로 되지 않고, 매사가 더디기만 한 것 같아도, 안달하지 마십시오. 모든 때를 아름답게 하시는 주님을 깊이 신뢰하며 오늘이라는 시간을 충실하게 채우십시오.


"하느님은 모든 때를 아름답게 만드셨다"

(코헬렛 3,11)


"너 그동안 애셨다. 너 그 많은 세월을 고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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