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릴수록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들 중에서 - 더 많이, 더 크게, 더 빨리...
우리는 빛과 어둠 사이를 오가며 삽니다. 어떤 때는 우리 마음이 푼푼하고 따뜻해서 다른 사람들 마음을 시원하게 하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소견이 좁고 날카로워 사람들 가슴에 상처를 내기도 합니다. 우리가 빛으로 살 때는 대개 '나'를 잊을 때이고, 어둠으로 살 때는 나'에게 사로잡혀 있을 때입니다. 나에게 골똘할 때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교감하지 못합니다. 함께 기뻐하지도, 함께 슬퍼하지도 못합니다. 누군가를 만나고 돌아설 때, 마치 봄바람을 만난 것처럼 우리속에 어떤 생동하는 기운이 느껴질 때가 있으시지요? 어떤 사람입니까? 그는 자기에게 사로잡히지 않은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의 형편과 처지에 공명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세상을 자기중심으로 바라보는 사람과 만난 후에는 왠지 모를 불쾌감이 가슴에 남게 마련입니다. 자아가 강한 사람, 자기중심적인 사람은 걱정이 많습니다. 늘 불안합니다. 다른 이들을 신뢰하지 못합니다. 그렇기에 늘 비평적이고 냉소적입니다. 물론 그가 그렇게 된 것은 삶이 너무 힘들고 각박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불쌍한 사람입니다. 이기심이라는 동굴에 갇혀 더 넓은 세상을 보지 못하고 사니 말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마라."(마태오 6,25)라고 말씀하십니다. 자칫하면 오해하기 쉽습니다. 이 말씀을 볼 때마다 세상 물정 몰라서 하시는 말씀이라고 주님께 불퉁거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에게 근거 없는 낙관론에 빠져 살라고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가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함을 모르지 않습니다. 주님이 경계하시는 것은 염려하고 걱정하면서 조바심치는 마음입니다. 걱정한다고 해서 걱정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걱정은 오히려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우리 내면의 힘을 약화시킵니다. 걱정의 뿌리에는 '더'를 추구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더 많이', '더 크게', '더 빨리'라는 구호 속에서 우리 영혼은 파리해집니다. 하지만 욕망의 그릇을 줄이면 걱정도 줄어듭니다. "자족할 줄 아는 사람에게는 신심에 큰 이득이라면서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우리는 그것으로 만족해야 한다"고 성경은 말합니다.(티모테오1 6,6-7) 반면 부자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유혹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도 해로운 욕심에 떨어집니다. 우리가 익혀야 할 삶의 기술은 작은 것에 만족하고 감사하기를 배우는 것입니다. '더'가 아니라 '덜'의 삶을 터득하면 삶은 축제가 됩니다. 덜 갖고 덜 쓰기로 작정하면 삶이 가벼워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