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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좀 주시오."
"당신은 유대 남잔데 어떻게 사마리아 여자한테 마실 것을 달라시지요?"
(요한 4,5-42)  

'시켐 아낙네라면 나도 치가 떨린다, 저들도 나를 무슨 송충이 보듯하지만...
나만 보면 입을 삐쭉거리고 도끼 눈을 하고 속닥속닥 입질을 하는 품이 마치 내가
이 동네에 끼어 사는 바람에 저들이 모조리 부정한 여자가 되었다는 투다.

지금처럼 뙤약볕이 내리 쬐는 시간이 차라리 속 편하다.
정숙한 척 하는 여염집 여편네들과 맞부닥뜨리지 않아도 되니까.
허나 이 무슨 얄궂은 신세람...'

그런데 하필 그 시각에 웬 남정네가 하릴없이 우물가에 앉아 있었다.
허나 남자라면 차라리 자신있다, 그자들의 눈길이며 수작이며 속셈에는
이력이 났으니까. 모른 척 두레박질을 하며 흘끔 보니 유대인 옷차림이었다.


"물 좀 주시오."
(흠 슬슬 수작을 붙이기 시작하는구먼. 내가 이레뵈도 녹녹한 여자가 아니란 걸
보여줘야지. 동네 여자들이 나를 하시하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유대인이 사마리아
사람을 부정탄 죄인 취급한다는 것은 나도 겪어서 안다구.)
"당신은 유대 남잔데 어떻게 사마리아 여자한테 마실 것을 달라시지요?"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게다가 남자와 여자... 복잡한 갈등 구조다.

"당신한테 물 한 그릇 달라는 사람이 누군지 알았더라면..."
남자의 말씨는 온순하고 점잖았다. 그제서야 여자는 남자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여자는 직감으로 안다,

남자의 눈길과 그 의미를. 철들기 시작하면서 남자들의 시선 속에서
자신을 의식하는 것이 여자이므로, 그 눈길이 어디 머무는가에 따라서 여자는 자신을
포르노와 매춘의 대상으로 느끼거나,
저 태초에 하느님이 여자를 남자 인간 앞에 데려가셨을 때,
"드디어 나타났구나!"(창세기에 따르면 인간이 창조되어 발설한 첫 마디였다!)하는 경탄과
사랑의 대상으로 의식하던가 한다.

사마리아 여자는 낯선 그 유대 남자의 무죄한 눈에서 자기 영혼 깊숙한 데를
들여다보는 연민을 느꼈다. 막달라의 마리아, 간음하다 들킨 여자, 십자가 밑에까지
그를 따라가게 될, 여러 여자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은 그 시선이었다.....

그 눈에는 사람을 극진히 아끼고 가난한 인생을 어루만져 주는 자비가 담겨져 있었다.
야곱의 우물물을 두고 어렵사리 시작한 두 사람의 대화는 이제 신학의 차원으로,
그리고 하느님의 구원 경륜으로 발전한다. 다섯 번이나 버림받고 여섯 번째 남의 남자에게
얹혀 사는 이 여자 내심에 하느님과 담소할 만한 여신학자가 숨어 있었다니!

정말 사람은 남에게 사랑받는 그만큼만 자신을 사랑하게 된다.
남에게 받는 존경심으로 사람은 자신을 존경하는 법이다.

사랑이 구원과 함수관계를 갖는다는 말은 평범한 뜻을 지녔다.
사랑하는 남자의 배신은 여자의 마음을 닫게 만들고, 일단 그렇게 닫혀진 마음은 자칫
하느님께도 폐쇄된다(그것은 멸망을 의미한다). 그리고 조개처럼 꼬옥 닫혀버린 인간의
마음을 여는 것 역시 사랑뿐이다.

세상에서 "사랑이 아니고는 무엇도 정화하지 못하고 무엇도 새롭게 만들지 못한다.
" 사막처럼 메말라 보이지만 누가 한 삽만 더 파면 거기 축축한 물기가 흐름을 사랑은 알아본다.
굳게 닫힌 문이지만 누가 단 한번만 노크를 하면, 아니 살짝 밀기만 해도 열리리라는 믿음을
사랑은 안다.

예수님의 대인관계와 처신이 항상 그렇지만
여기서도 예수님은 상식을 뛰어넘고("제자들은 그분이 여자와 이야기하시는 것을 보고 놀랐다"),
사태를 뒤집고("저에게 그 물을 주십시오"), 사정을 달리 보고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할 날이...")
인간을 바꾸어 놓는다.

이전의 철저한 고립에서 벗어나 여자는 처음으로 동네 사람에게 말을 붙이게 된다.
그리고 그녀의 개방은 동네 사람들을 구원으로 이끌어 간다.

그래서 "앵두나무 우물가에 동네 처녀 바람났네"라고 시작하는 우리네 민요는
야곱의 우물가에서 한 여인에게 하느님 사랑이 싹트고 그 여자를 통해서 시켐 마을 사람들
모두에게 구원이 이르는 아가(雅歌)로 바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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