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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의 언어들 중에서 - 접촉과 저항...


바오로 사도는 아테네 사람들에게 세상의 구원자인 예수님을 믿으라고 다짜고짜 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전하기 위해 약간의 우회로를 선택합니다. '내가 돌아다니며 여러분의 예배소들을 살펴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겨진 제단도 보았습니다. 여러분이 알지도 못하고 숭배하는 그 대상을 내가 여러분에게 선포하려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접촉점이 마련됩니다. 바오로의 신학은 스토아철학이나 다른 철학을 일절 배제한 이론이 아닙니다. '사랑'의 덕목으로 잘 알려진 코린토1서 13장에는 스토아 철학이 가르치는 덕목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바오로는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서 다른 철학이나 사조가 사용하는 개념이나 이미지를 사용하는 데 주저함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한 번도 예수라는 중심에서 벗어난 적이 없습니다. 그는 유사함에 주목하는 한편 차이를 드러내는 일에도 소홀하지 않습니다. 바오로는 '멸망할 자들에게는 십자가에 관한 말씀이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을 받을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힘입니다.'(코린토1서 1,18) 라고 했습니다. 십자가는 그리스 사람에게는 어리석어 보이고, 유대 사람에게는 걸림돌입니다. 그러나 믿는 이들에게는 구원의 능력입니다. 차이를 드러내는 것, 이것이 곧 저항입니다.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임기웅변이라는 단어는 그저 알팍한 처세술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임기응변'에서 '기'는 돌쩌귀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돌쩌귀는 문을 여닫기 위한 쇠붙이입니다. 문이 여닫힌다는 것은 변화의 가능성일 것입니다. 변화의 순간을 맞이하여 그 상황에 따라 대처하고 대응하는 것이 바로 임기응변입니다. 바오로는 임기응변의 대가입니다. 


유다인들을 얻으려고 유다인들에게는 유다인처럼 되었습니다. 율법 아래 있는 이들을 얻으려고, 율법 아래 있는 이들에게는 율법 아래 있지 않으면서도 율법 아래 있는 사람처럼 되었습니다.  나는 하느님의 율법 밖에 있지 않고 오히려 그리스도의 율법 안에 있으면서도, 율법 밖에 있는 이들을 얻으려고 율법 밖에 있는 이들에게는 율법 밖에 있는 사람처럼 되었습니다. 약한 이들을 얻으려고 약한 이들에게는 약한 사람처럼 되었습니다.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려고,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었습니다. (코린토1서 9,20-22)


오늘날의 선교 또한 이러해야 하지 않을까요? 타문화권에 가서 일방적으로 복음을 선포하기보다 그 문화를  깊이 이해하려 노력하고, 그들의 문화적 문법을 충분히 존중해 주며, 그러한 과정 중에 서로에 대한 신뢰가 커질 때 조금씩 차이를 드러내면 어떨까요? 여러분은 당당한 사람이 좋습니까, 아니면 머뭇거리는 사람이 좋습니까? 사실 이것은 좋은 질문이 아닙니다.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대답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때는 당당하게 처신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타자의 입장에 대한 배려 혹은 고려가 배제된 당당함은 폭력적으로 보입니다. 자기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가 옳다고 확신합니다. 확신은 좋은 것이지만 때로는 타자들을 배제하기 위한 프레임으로 작동될 때도 있습니다. 머뭇거림은 타자관계에서는 여백을 주기 위한 것이고, 자기관계에서는 성찰적 거리를 유지하려는 태도입니다. 머뭇거림은 배우려는 개방성과도 관련됩니다 공부하는 이들은 자기가 아는 것 속에 그대로 머물려 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바탕으로 '모름의 세계'를 항해 나아갑니다. 모름의 세계와 만날 때 우리는 사뭇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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