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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이 메세지다 중에서 - 소박하고 담백한 말


말들이 제 집을 찾지 않는 한 우리는 서로 신뢰할 수 없다. 말은 한 사회의 신뢰의 토대이다. 말이 탁해지고 독해지면 그 사회는 병들고 만다. 우리는 말을 통해 세상을 만지고, 세상은 또한 말을 통해 우리 육체와 영혼을 어루만진다. 말에 덧씌워진 눅진눅진한 욕망과 거짓을 벗겨내 말의 참값을 되찾아야 한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예수의 대답은 간단하다. 

'너희는 말할 때에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여라.'(마태 5,37)

자기 말의 진실성을 담보하기 위해서 다른 권위에 기대지도 말고, 화려하게 겉꾸미지도 말고, 소박하게 말하라는 것이다. 위험이 예상되는 상항에서 어떤 경우에라도 진실을 지키라는 비장한 명령인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아니다. 예수는 사람들의 말살이가 바로 잡히지 않으면 아름다운 세상의 꿈은 한갓 허망한 꿈에 지나지 않을 것을 너무나 잘 아셨다. 그래서 우리가 말에 덧붙여온 허장성세를 걷어내라는 것이다. 졸가리를 통과한 바람처럼 소박하고 담백하게 말하라는 것이다. 


아, 참 어럽구나. 자기를 미화하려는 욕망도 없이, 누군가를 설득하려는 조바심도 없이, 그 말이 일으킬 정서적 효과에 대한 치밀한 계산도 없이, 자기 내면의 진실에 입각하여 말하는 이들은 얼마나 희귀한가? 삶이 곧 자기 말에 대한 담보인 사람은 얼마나 힘찬가? 


시인 정현종은 <장난기>라는 시를 통해 우리들 말살이의 실상을 아프게, 그러면서도 우스꽝스럽게 드러내었다. 

'내 말보다는 아무래도 셰익스피어가 한 말이라고 해야 먹힐 것 같아 나는 장난기가 동하면 가끔 내 말을 셰익스피어가 한 말이라고 하고 말을 한다  사람들은 긴가민가하면서도 (셰익스피어가 안 한 말이 있겠느냐 싶기도 하여) 표정을 고쳐가지고 듣는다.  시인은 '장난기'라는 제목 뒤에 숨어서 제값을 잃은 말의 운명을 탄식하고 있다. 시인은 말을 다루는 자이니까 말이 힘이란 걸 안다. 


체코공화국의 대통령이었던 바슬라프 하벨의 말은 시사하는 바가 많다.  


'똑같은 말이 한 순간엔 큰 희망을 방출하다가도, 다른 순간에는 살인 광선을 내뿜기도 한다. 똑같은 말이 한 순간엔 참이었다가 다음번엔 거짓으로, 그리고 사태를 명확하게 조명해주다가도 또 다른 순간엔 기만적으로 될 수 있다. 그것은 어떤 경우에는 찬란한 지평을 열어주다가, 다음번엔 수용소에 이르는 통로를 세우기도 한다. 같은 말이 한 시점에서는 평화의 주춧들이었다가, 다음 순간엔 그 음절 하나하나마다 기관총 소리가 울려 퍼질 수도 있다.' 


'말'이 곧 창조의 도구임을 아는 그리스도인들이야말로 말의 제값 찾기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의 말에 육신을 부여해야 한다. 말과 삶을 틈 없이 일치시키는 '정성스러운 삶', 예수가 걸었던 그 길을 우리도 걸어야 한다. 종교적 권위의 옷을 입고 기관총 소리치럼 울려 사람들의 영혼을 혼란에 빠뜨리는 말 말고, 욕망의 먼지를 뽀얗게 일으키는 큰 소리 말고, 영혼의 귀를 통해 들어가 가슴과 내장을 거처 온몸 구석구석까지 휘돌다가 마침내 육체를 입고야 마는 말, 그것이  참 말이다. 말이 너무 많았다. 눈빛만으로도 마음의 통할 수 있다면 말은 단순해지리라. 문제는 삶이고 정성이다. 세상에서 가장 힘 있는 말을 듣는다.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빛이 생겨라.” 하시자 빛이 생겼다.'(창세기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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