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성(諡聖) 30주년,
새로운 복자(福者) 124위 탄생을 기다리며
한국교회가 지난 2백주년의 해 103위 한국성인 탄생 이후
열심히 기도하고 열망한 대로 하느님의 종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의
시복이 최근 프란치스코 교황성하에 의해 결정되었습니다.
지난 1984년 우리나라를 사목방문하신 복자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03위가 시성된 지
꼭 30년만입니다.
또한 이는 1925년의 79위 시복식, 1968년의 24위 시복식에 이어 세 번째로 -
마산교구 순교자 5위를 비롯하여 - 124위의 새로운 복자 탄생을 맞이하게 된 것
이지요. 교황성하께서 지난 1984년과 1989년에 이어 우리나라를 또 다시 찾아
오신다니 이 얼마나 감사하고 은혜로운 경사인가요.
이번에 시복이 결정된 124위 순교자들은
대체 누구이고 언제 어디서 순교하신 분들인가. 보도자료를 보면, 신해박해(1791년)부터 병인박해(1866년) 때까지 순교한 창설초기 신자들입니다.
순교지로는 남한 전역으로 분포되어 있는데 서울(한양)이 37명으로 새남터 1명,
포도청 5명, 서소문밖 25명, 당고개 1명, 사망장소 불명 5명 입니다.
경상도가 29명으로 대구가 19명, 울산 3명, 동래1명, 진영과 진례2명, 진주 함안,
거제, 상주가 각 1명씩이며.
전라도에서는 24명이 순교했는데, 한국교회 최초의 순교자 윤지충(바오로)이 순교한
전주가 22명, 김제와 무장이 각 1명이랍니다.
충청도에서는 청주 5명, 홍주 4명, 해미 3명, 공주 2명, 정산과 덕산, 예산, 대흥 각 1명
으로 모두 18명이 순교했으며.
경기도에서는 13명으로 여주에서 5명, 양근에서 3명, 죽산에서 2명, 경기감영, 포천,
남한산성에서 각 1명이 순교했습니다.
강원도 순교자 3명은 모두 원주가 순교지다. 124위의 신분은 양반이 60명, 중인 33명,
천민 4명, 신분미상 27명으로 엄격한 신분사회에서 우리 선조 초기 천주교 신자들은
신분의 벽을 넘어 신앙공동체를 이루었음을 보여줍니다.
특기할 만한 것은 중국 소주 출신인 주문모 신부를 제외하면 모두 평신도들이라는
점입니다.
연령대별 분포는 10대가 5명, 20대 15명, 30대 21명, 40대 21명, 50대 19명, 60대 11명,
70대 5명이며 연령 미상도 27명이나 됩니다.
한국교회사는 2백년 역사가운데 전반부 백여 년은 물론 왜정 치하와 한국전쟁
그리고 군사독재 시절 등 근현대사 전체가 가히 순교와 박해와 고난과 수난사로
점철된 순교사라 할것입니다.
유명 무명의 순교자가 만 명인지 이만명인지 헤아릴 길이 없습니다.
증거적 자료가 남아있는 극히 소수의 순교자와 증거자들을 대상으로 시복시성 운동이 펼쳐졌다고 할 것이다.따라서 시복시성을 기뻐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
그 어둡고 어려운 시절 순교자보다는 배교자가 더욱 많았음에 주목하며 -
가슴에 손을 얹고 스스로 순교자의 후예인지, 아니면 자칫 배교자의 후예는 아닌지
자신의 삶과 신앙을 돌아보아야 하리라.
다시 한번 2백주년의 모토인 ‘이 땅에 빛을’을 새기며
‘신앙의 유산을 보전하자’던 메시지를 온 몸으로 체득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