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을 기억하자
내일이면 교황님이 우리나라를 방문하신 가운데 성모님의 승천대축일을 맞이한다.
그리고 16일날이면 124분의 자랑스런 순교선조들이 복자품에 오르실 것이다.
한국교회의 영광이고 우리 모두의 큰 기쁨이다. 그러나 성모님의 승천과 순교자들의
시복이라는 영광이 그저 주어지지 않았다.
성모님의 일생, 순교자들이 순교에 이르기까지 겪었던 혹독한 시련의 나날들
그 과정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쫓기고, 잡히고, 고문당하고, 조롱당하고 마침내
죽임당하는 그 모든 것을 견디면서도 끝까지 놓지 않은 그 무 엇 때문에, 아니
결코 잃을 수 없는 그 무엇을 지키기 위해서 나머지 것들은 잃는 것을 감수했기
때문에 오늘 그분들의 영광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매일미사에서 힘을 얻고, 우리 신앙의 기본을 되새긴다.
주님의 십자가와 죽음과 부활. 그것은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의 징표인 동시에
우리가 가야할 길에 대한 가르침이다. 희생을 통한 영생의 길.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선명한 이정표이다. 살아가는 중에 온갖 현란하고 솔깃한 안내 표지판들을
만나게 되지만 대개는 속임수이거나 그럴듯 하기만 해서 들어섰다간 미로를 헤맨
끝에 결국 되돌아 나오기 일쑤이다.
성모님과 순교자들은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신 또 다른 모습의 이정표이다.
우리를 앞서 걸어가셔서 그분들이 남긴 발자욱은 우리가 가야할 길을 가리키고
계신다. 때로 힘겨워하는 우리곁에서 격려하고 용기도 주신다. 그저 바라보기만
하고 걷지 않으면 도달하지 못할 것이다.
오늘은 또한 광복절이다. 남을 해치고 남의 것을 빼앗아 자신을 보전하고
강화 하고자 하는 사악한 권력자들에 의해서 동아시아의 선량한 백성들이 겪은
고통과 상처가 그 얼마였던가?
역사는 반복된다고 하지 않는가? 오늘날에도 기회만 있으면 온갖 거짓명분으로
전쟁불사를 외치는 세력들이 있음을 우리는 간파하고 대처 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런 자세는 교황님이 말씀하시듯이 또 다른 사랑의 실천이다.
전쟁의 희생자를 도우는 사랑보다 전쟁을 막는 행동이 더 크고 현명한 사랑인
것이다. 우리나라가 광복되는데는 우리가 기억함직한 또 다른 불의의 희생자들도
있었다. 전쟁을 끝내기 위한 극약 처방으로 히로시마에 이어 1945년 8월 9일
또 한발의 원자폭탄이 나가사키 상공에 투하되었는데 나가사키는 300년 가까운
박해 속에서도 신앙을 지켜온 잠복 기리시탄이 가장 많았던 일본 가톨릭의 중심지
였다. 신앙의 자유를 얻고 나서 신자들이 힘을 모아 동양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우라카미 성당을 세우고 그 주변에 1만 2천 명의 신자들이 살고 있었다.
군수공장을 겨냥한 폭탄 은 바람을 타고 우라카미 성당 상공에서 폭발하였고
8천 5백 명의 신자들이 산화하였다.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님을 주 보로 모신
우라카미 성당과 신자들이 희생물로 바쳐지고 일본이 항복한 날이 성모 승천
대축일이었다는 것이 우연의 일치이기만 할까?
그들이 하느님 보시기에 가장 흠없는 제물로 선택된 것이 아닐까? 성모님의 희생,
순교자들의 희생 그리고 우라카미 신자들의 희생을 생각하게 하는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