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과 말과 행위
“나는 길을 잃었네. 어두운 숲속에서….”
이탈리아의 시인 단테의 대서사시 『신곡』의 초입에 나오는 정황입니다.
숲속에서 길을 잃은 단테는 빛을 발견하고 그쪽으로 향했으나 세 마리의 짐승이 앞을
가로막습니다. 세 마리의 짐승은 표범과 사자, 늑대입니다. 이 비유는 좀 무서운데요,
어두운 숲속은 죄에 물든 단테 자신입니다. 각각의 짐승은 향락과 오만, 탐욕을 상징합니다.
우리는 늘 이런저런 죄를 짓고 세속에 노출된 채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사 때마다 “생각과 말과 행위로 많은 죄를 죄었으며…”라고 고백을 하며
내 탓이라고 가슴을 칩니다. 혹시 생각과 말과 행위가 세 마리의 짐승은 아닐까요?
그리하여 어두운 숲속을 헤매는 우리 앞을 막고 있지나 않을까요? 생각,말, 행위, 세 개의
낱말이 인간의 삶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매순간 생각하고
말하고 행위를 하게 되니까요.
어느 날 ‘생각 ’합니다. 창문을 열고 맑은 공기를 흠뻑 마시며 ‘하늘이 참 푸르다.
새소리 높고 뺨에 와 닿는 바람은 비단결처럼 보드랍다. 세상이 참 아름답구나.
그래, 잘 살아보고 싶다. 보시기에 좋게 살아야겠다.’ 그런 생각을 합니다. 다른 날에는
다른 생각을 합니다. ‘몸이 천근이다. 희망이 보이지 않네. 도대체 되는 일이 없어.
될 대로 되겠지.’ ‘말’도 그렇습니다.
말이야 말로 치유가 되기도 하고 칼날이 되기도 하지요. 말로써 상처주고 말 때문에
상처받은 일이 부지기수입니다. 내가 던진 상처는 기억하지 못하고 내 가슴에 꽂힌 상처는
오래 되씹고 헤집으며 괴로워합니다. ‘말’을 두고 긴 성찰을 합니다. 내가 말을 잘못했구나,
그의 말을 잘못 알아들었구나, 하는 깨달음이 옵니다.
마음을 열어야겠다는 다짐도 합니다.
그런 날에는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란 말들이 거짓없이 나옵니다.
기뻐하면서 걷다보면 길섶에 핀 작은 꽃이 눈에 들어옵니다. 쪼그리고 앉아서 작은 꽃과
눈을 맞추며 환하게 웃습니다. ‘행위’는 좀 더 가시적으로 드러납니다. 보통은 생각을 거쳐
말로 표현하고 거기에 맞는 행위를 하게 됩니다.
선악이 분명한 경우가 아닐지라도 먹고 잠자고 움켜쥐고 내려놓고 따위가 다 행위입니다.
평범한 사람은 비난받을 만한 행위를 그다지 하는 것 같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선량하니까요. 생각과 말과 행위로 많은 죄를 지을 수도 있지만 그 반대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 세 가지를 봉헌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보다 좋은 생각을 하고 고운 말을 하며 선한 행위를 해야합니다.
이제 어두운 숲속을 벗어나서 빛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새소리 바람 소리를 기뻐하고, 작은 생명을 어여삐 여기며, 멀어진 이에게 다가갈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저의 뜻을 헤아려 주시고 축복을 주시는 하느님께
늘 감사드리며 믿는대로 되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기도합니다. “저의 생각과 말과 행위를 당신 뜻대로 다스리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