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닿은 사랑 중에서 - 평화를 찾아 따르라...
“나에게는 너희가 모르는 먹을 양식이 있다.”(요한 4,32)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사람은 자기의 일상 가운데서 평화를 추구해야 한다. 하루 일과를 시작하기 전에 몇 분만이라도 조용히 앉아서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어 보라. 들이마시는 숨결을 누리고, 내쉬는 숨결을 누려 보라. 숨은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니 숨심을 통해 하느님의 임재를 경험하라는 말이다. 그리고 조용히 미소를 지어 보라. 그것은 우리 속에 기쁨을 영접하는 행위이다. 그런 후에 자신에게 '나는 평화롭다'고 말해보라. 이것은 하루를 시작하는 경이로운 방법이다. 하지만 우리는 하루에도 여러 번 마음의 평화가 깨지는 것을 경험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바람이 불면 촛불이 일렁이는 것처럼 온전히 하느님께 이르지 못한 우리 마음은 작은 자극에도 흔들리기 때문이다. 누가 약을 올리거나, 부당한 일은 하면 '참아야 하느니라, 참아야 하느니라' 하고 주문은 외다시피 해보아도 어느 순간 감정이 둑을 넘는다. 그러면 우리는 모든 화를 상대방에게 쏟아낸다. 정도 이상으로 화를 내는 까닭은 화를 끝내 참지 못한 자책감까지 그에게 덮어씌우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 마음이 평안해질까? 집착을 버려야 한다. 마음에 집착하는 바가 있으면 평화는 없다. 집착은 잃어버릴까, 사라질까 두려워하는 마음이다. 그러니 마음은 늘 긴장하고, 경계심을 늦추지 못한다. 순간순간마다 자신을 하느님의 뜻에 바처보라. 아니, 모든 일 속에 하느님을 초대하라. 하느님이 우리 마음에 오시면 인생이 쉬워진다. 욕망이 일으키는 번뇌도 사라진다. 굳이 남에게 이기려고 하지 않는다.
마음이 평화로울 때 우리는 굳이 남에게 이기려고 혈안이 되지 않는다. 형이 기어코 동생을 이겨먹으려고 하는 데서 감정이 상하고 싸움이 난다. 져 줄수 있는 것은 어른뿐이다. 져 주는 사람이 있는 곳에는 싸움이 일어날 수가 없다. 평화는 총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총칼로 사람들을 굴복 시킬 수는 있겠지만, 그곳에는 원망과 저주가 끊이지 않는다. 조금 형편이 나은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 양보하고, 큰 나라가 작은 나라에게 져주는 세상이 좋은 세상이다. '다르마'는 산스크리트어로 '진리'를 뜻하는 말이다. 그런데 그 어근인 '다르'는 '떠받친다, '유지한다'는 뜻이다. 진리란 결국 모든 것의 밑에서 떠받쳐주는 것이다. 우리가 진리에 속한 사람이라면 남을 복되게 해야 한다. 그게 평화의 길이다. 메뉴판을 읽는다고 배가 부르지는 않는다. 말을 아끼고, 악을 버리고 선율 행하라. 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평화을 추구하는 사랑의 사람이 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