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닿은 사랑 중에서 - 하는 일마다 잘 된다니?...
'이것을 받아 삼켜라. 이것이 네 배를 쓰리게 하겠지만 입에는 꿀같이 달 것이다.'
(요한묵시록 10,9)
귀로만 듣는 이들에게 하느님 말씀은 꿀같이 달다. 하지만 그 말씀을 삶에 적용하는 일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우리 삶의 변화를 요구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읽지 않거나, 설사 읽는다 해도 밑줄만 긋는다. 말씀을 인용할 줄은 알지만 그 말씀을 삶의 척도로 삼아 나를 바꿀 생각은 하지 않는다.
하느님의 말씀은 그렇게 읽는 것이 아니다. 존재 전체로 읽어야 한다. 그래서 어떤 이는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읽을 것이 아니라 말씀이 나를 읽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말씀 한 마디라도 붙잡고 철저히 궁구하다 보면 삶의 중추가 보이게 마련이다.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는 삶의 입장이 생긴다. 그걸 붙잡아야 삶이 요동치지 않는다. 시인은 그걸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고 그분의 가르침을 밤낮으로 되새기는 사람. 그는 시냇가에 심겨 제때에 열매를 내며 잎이 시들지 않는 나무와 같아 하는 일마다 잘되리라. (시편 1,2-3)
이 구절을 읽으면서 늘 마음에 걸리는 것은 "하는 일마다 잘 될 것"이라는 대목이다. 이건 우리 현실 경험에 들어맞지 않는 것 같다. 공평함이 없는 세상에서 우리는 악인이 잘 되고, 선인들이 어려움을 겪는 현실을 목도한다. 그러면 시인의 이런 고백은 원망사고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여기에 우리의 딜레마가 있다. 단적으로 말하겠다. 하느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사람은 '하는 일마다 잘 된다'는 말이 옳다. 하느님은 당신의 종들을 지키시고 보호하신다. 그들에게 복을 내리신다. 그들의 마음이 시들지 않게 생기를 불어넣어 주신다.
하지만 여기서 '잘 된다'는 말을 내 욕망이 이루어진다는 뜻으로만 생각하면 안 된다. 하느님 말씀대로 살다 보면 어려움도 겪는다. 예언자들의 운명이 그랬고, 사도들의 운명이 그랬다. 그럼 그들은 불행한 이들인가? 인간적으로 보면 그렇다. 하지만 영원의 관점에서 보면 그들은 승리자들이다. 하느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나의 나됨을 지킨다는 것보다 소중한 일은 없을 것이다. 줏대가 바로 서면 조금 덜 먹어도, 조금 덜 편안해도 행복을 누릴 수 있다. 무슨 일을 만나든지 우리의 걸음걸이를 주님의 말씀에 굳게 세우려는 마음이 속에서 솟아나오는 순간 우리는 이미 하늘에 속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세월이 흐를수록 우리 마음이 스산한 까닭은 창고에 많은 것을 거두어 들이지 못해서가 아니라, 이루어야 할 존재의 목표로부터 멀어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다시 한 번 하느님의 말씀을 날줄로 삼고, 우리의 시간과 삶의 조건들을 씨줄로 삼아 사람다운 사람의 길을 걷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