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닿은 사랑 중에서 - 시편은...
성경의 하느님은 세상의 모든 존재를 귀하게 여기신다. 하느님의 형상이라는 말은 가장 깊은 의미의 인권 선언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은 하느님 앞에서 살 때 인간답다. 하느님의 낯을 피하거나 등을 돌리는 순간 전락이 시작된다. 자기를 강화하기 위한 욕망에 확고하게 사로잡히기 때문이다. 인간은 하느님에 대한 경외심과 욕망 사이에서 바장인다. 희망과 절망, 기쁨과 슬픔, 확신과 회의, 빛과 어둠, 아름다움과 추함, 정의와 불의, 사랑과 미움이 시도 때도 없이 갈마들며 삶의 무늬를 만든다.
시편의 세계는 그런 인간의 삶이 빛어낸 다채로운 무늬로 가득 차 있다. 기쁨의 찬가가 있는가 하면, 깊은 탄식이 있고. 하느님의 인자하심에 대한 감사가 넘치는가 하면, 아무리 불러도 응답하지 않는 하느님에 대한 원망도 있다. 가없는 용서의 마음을 드러내는 '시'도 있지만, 악인이나 원수들의 불행을 기원하는 '시'도 있다. 시편 속에는 인간이 이 세상에서 겪는 온갓 경험이 녹아들어 있다.
시편은 신앙공동체의 기도이다. 그 속에는 기쁨과 슬픔이 있고, 분노의 절규도 있고, 탄식도 있다. 특히 시편은 불의한 이들이 득세하는 세상에서 고통당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시편은 점잖은 체하는 우리의 가면을 사정없이 벗겨내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우리를 하느님 앞에 세운다. 시편은 우리 내면의 거울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 시편은 하느님 앞에 자신의 속마음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 보이는 이들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보여주기도 한다. 시편은 격렬한 분노로부터 말로 다할 수 없는 평화까지 우리 감정의 흐름을 잘 드러내고 있다. 그래서 시편을 읽을 때 우리는 회의를 거친 믿음, 어둠을 거친 빛, 분노를 거친 평안함과 만나게 된다.
시편은 가벼운 푸념이 아니다. 하느님 앞에서 부르는 찬양이다. 시편 시인들은 자기 영혼 속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갈등을 깊이 직관하는 관찰자인 동시에 세상에 만연한 아픔을 누구보다 예민하게 느끼는 사람이다. 시편을 읽는다는 것은 일상의 무게에 짓눌려 보지 못했던 삶의 다른 층위를 바라보는 일이다. 마음을 다해 시편을 읽거나 낭송하는 일은 우리 속에 들끓고 있는 소리를 잠재우는 일이고, 다른 차원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라 할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