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등불 밝히고 중에서 - 가련한 사람들...
신앙의 길에 접어들었으나 '인격의 변화, 지향의 변화, 삶의 변화'가 없는 신앙을 사는 사람들을 디도서 저자는 그런 이들의 삶을 세 가지로 요약합니다. 그들은 '복종하지 않으며, 헛된 말을 하며, 속이는 사람들'입니다. 복종하지 않는다는 말은 성도답게 훈련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훈련을 받지 못하면 제멋대로 살게 됩니다. 저는 복종보다는 순명이라는 말을 더 좋아합니다. '순명'이라 할 때의 순은 순하다는 뜻이 아니라 '따른다'는 뜻으로 새겨야 합니다. 명을 따르는 게 순명입니다. 그런데 순은 내 '천'자에 머리 '혈' 자가 결합된 말입니다. 머리를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향하는 것이 순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 머리를 하느님을 향하고, 하느님의 뜻을 쫓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우리는 머리를 어디에 두고 삽니까? 어떤 뜻을 좇으며 살고 있습니까? 순명하는 사람은 귀를 기울여 듣는 사람입니다. 순명의 사람이 말이 많지 않은 것은 그 때문입니다. 순명하지 않는 사람일수록 말이 많습니다. 말이 많은 사람은 선을 행하기 어렵습니다. 부질없는 말로 분란을 일으키기 일쑤입니다. 수군거리고 비방하고 불평하면서 공동체를 내적으로 붕괴시킵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영광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근사하게 보이도록 하는 것입니다. 마하트마 간디는 자기의 평화운동을 '사티아그라하'라는 말로 요약했습니다. '사티아'란 '본질 혹은 진실'을 뜻하고 '그라하'는 '붙잡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본질 혹은 진실을 꼭 붙들면 거기서 힘이 나옵니다. 그리스도인들이야말로 사티아그라하의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진리를 꼭 붙잡지 못한 사람일수록 헛된 말과 외적 행위에 집착합니다. 할례를 강조하고, 율법에 집착하고, 금욕주의를 강조합니다. 그들은 경건해 보입니다. 남과 달라 보입니다. 그래서 남에 대해 비평적 언어를 늘어놓고, 대놓고 사람들을 가르치려 합니다. 하지만 디도서의 저자는 그런 이들의 이면에 있는 동기가 부정한 이득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경제적인 것이든, 사회적 평판이든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경건을 사적인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삼습니다. 문제는 자기 스스로도 그것을 의식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누군가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 그것처럼 달콤한 것이 없습니다. 자기가 중요한 사람처럼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 영혼에 독이 되기 일쑤입니다.